히스테리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들, 춤추는 할머니를 꿈꾸다

권수빈 기자 / 기사승인 : 2025-11-21 09: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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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두산아트센터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동시대 여성의 감각과 불안이 무대에 올려진다. 2023년 제14회 두산연강예술상 공연예술부문 수상자 이오진이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는 ‘불안한 여자들의 혼종 음악극’이라는 선언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이 시대의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는 20~50대의 여성 배우 여섯 명이 각자의 삶에 기반한 서사를 직접 쓰고, 감정을 음악·동작·퍼포먼스로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나중에 춤추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용해온 감정의 언어들을 다시 점검하자는 제안처럼 들린다. 작품은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불안과 수치심, 고단함을 말보다 먼저 움직이고 노래하는 신체로 드러내려 한다.

이오진은 두산연강예술상 수상 후 약 2년간 준비해온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이번에 세상에 내놓는다. 그가 이전 작품 ‘댄스 네이션’(2023)에서 보여준 청소년·여성의 신체성과 감정의 정치성에 대한 탐구가 이번 작품에서 확장, 그의 창작세계가 깊이 있게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이 직접적으로 호출하는 감정은 ‘히스테리’와 ‘앵자이어티(불안)’다. 두 단어는 역사적으로 여성에게 과도하게 부착된 감정의 이름이었고,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젠더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겪는 정서로 확장돼 있다. 이오진은 이러한 감정을 병리적 언어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감각’으로 재배치하며, 나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함께 춤추는 노년’이라는 상상으로 연결한다.

작품의 1막이 오늘의 여성들이 살아가는 조건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면 2막은 생활동반자법과 사회적 가족법이 법제화된 근미래인 2058년을 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불안을 미래의 변화와 연결한다. 환상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미래상은 관객에게 ‘가능한 세계’를 상상할 여지를 남긴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이번 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음악’의 비중 확대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단편선은 장르적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으로, 여성들의 서사에 감정적 리듬을 부여한다. 그의 참여는 작품이 ‘음악극’이라는 형식을 드러내는 핵심이 되며, 감정의 무게를 소리로 번역하는 데에 힘을 싣는다.

두산아트센터가 2020년 이후 도입한 공동기획·제작 시스템은 이번 작품의 구성에도 깊게 반영됐다. 제작 전반을 창작자가 주도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이오진은 외부의 틀에 맞춘 연출이 아닌 창작자들의 감각적 경험을 관객에게 직접 제안하는 구조를 구현해냈다. 이 방식은 최근 공연예술계에서 강조되는 ‘참여형·경험형 연극’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연극계에서는 “이오진의 문제의식이 가장 정점에 달한 작업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흐르고 있다. 이전에 그가 연출한 ‘댄스 네이션’이 《한국연극》 ‘공연 베스트 7’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며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만큼 이번 작품 역시 여성 집단극의 또 다른 진화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는 ‘불안을 견디고 결국 서로의 곁에서 춤추는 노년’이라는 추상적이지만 강력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감각하고 어떻게 서로의 생애를 지탱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함께라면 춤추는 할머니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편 작품은 오는 26일부터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관객과 마주한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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