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임스 = 우도헌 기자]
남해의 초여름 바다는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 더위에 지친 것은 육지의
인간들만이 아니라 해류를 따라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 역시 마찬가지다. 경남 통영 앞바다에서 3개월 금어기를 끝내고 시즌의 첫 그물을 내린 멸치 어선들은 오래 기다린 수확 앞에서 기대 대신 한숨을 먼저
꺼냈다.
멸치의 회유 떼는 과거처럼 집단을 이루지 않고, 고온화된 수온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남해안의 해수면 온도는 평년보다 약 1도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되며, 멸치 생산량의 60%를 맡아온
남해에서는 그 1도가 치명적이다. 5년 전 1만7000 톤에 달하던 남해 멸치 위판량은 어느새 1만 톤 수준으로 꺾였고, 단가는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기후 변화의 속도는 어민들의 속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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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제주 바다도 예외가 아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속 오징어 배 선장의
만선 풍경은 이제 영상 속에만 남은 오래된 풍경일지도 모른다. 2004년 2000 톤을 넘기던 제주의 오징어 생산량은 최근 3년 연속 500톤을 넘기지 못했고, 지난해엔
435톤에 그쳤다. 이는 전국적 감소세의 축소판이다. 전국
연근해 오징어 생산량은 2004년 21만 톤에서 지난해 1만3000 톤대로 주저앉으며 20분의 1 수준만 남았다. 2017년 이후
10만 톤 이하로 내려앉은 뒤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한 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멸치와 오징어가 함께 사라진 이유는 서로 닮았다. 해수온의 상승, 인간의 오랜 남획이다. 1990년대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는 한때 풍요를 누렸지만 최근의 고수온은 오히려 그들을 북쪽으로 밀어 올리고 어군을 분산시켰다. 유생
밀도도 낮아져 세대를 잇는 힘마저 약해졌다. 멸치 역시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 속에서 치어가 적응하지
못하며 자원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어획량 감소는 곧바로 우리의 식탁에 파문을 일으켰다. ‘금징어’라는 신조어는 더 이상 과장이 아니며, 멸치와 고등어, 갈치까지 수산물 전반의 물가가 상승해 지난달 소비자물가에서 수산물은 1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인상을 기록했다. 연근해 전체 어획량도 1980년대 평균 151만 톤에서
2020년대 93만 톤 수준으로 축소됐다. 고수온의
폭력은 양식장까지 스며들어 작년 집단 폐사 피해액만 1,430억 원에 달했다.
거대한 변화는 멸치와 오징어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40년간 멸치·고등어가 감소하거나 정체된 반면 방어·전갱이·삼치 같은 난류성 어종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어업인의 손끝에서 말리던 오징어, 국물의 주인공 멸치, 겨울 식탁의 고등어 같은 익숙한 풍경들이 조용히 더 멀어지고 있다. 기후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이며, 공백을 어떤 방식으로 채워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심각해지고 있다.
뉴스타임스 / 우도헌 기자 trzz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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