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뷰] 14년만의 귀환 ‘에비타’…“Don’t Cry for Me”가 다시 울려퍼지다

권수빈 기자 / 기사승인 : 2025-11-24 10: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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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블루스테이지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뮤지컬 ‘에비타’는 시대와 정치라는 배경 위에서 한 여인의 욕망, 야망, 사랑, 고독을 추적해온 작품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라는 전설적 듀오가 만들어낸 서사는 1978년 런던에서 첫 숨을 내쉰 뒤 토니 어워즈 7관왕을 휩쓸며 세계 뮤지컬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이후 여러 차례 리바이벌을 거치며 시대와 관객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의 결을 재해석해 왔다.


한국에서는 2006년 초연을 통해 첫 발을 내디뎠고, 2011년 재연 이후 14년 동안 침묵해온 끝에 2025년 광림아트센터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14년이라는 공백은 작품 자체가 가진 정치성·감정성·문학성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냈다. 이번 시즌은 긴 공백이 빚어낸 기대치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세련됨으로 귀환의 무게를 증명하고 있다.

‘에비타’의 중심에는 실존 인물 에바 페론(Eva Perón)이 있다. 흔히 정치적 상징이나 영웅 혹은 반영웅으로 읽히지만 작품은 그를 어느 하나의 정의로 가두지 않는다. 빈민층에서 라디오 스타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영부인까지 극적인 삶 자체가 이미 예술적 영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에바는 권력을 욕망했으나 동시에 자국의 가난한 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고, 자신을 향한 비난과 사랑을 모두 받아내며 대중의 신화를 스스로 구축한 인물이다. 이 같은 상반된 결은 관객에게 강한 매력을 줬고, 수십 년 동안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지켜왔다.
 

사진=블루스테이지

 

에바 페론이 예술계에서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의 삶은 영웅과 반영웅, 신화와 추락, 사랑과 정치, 숭배와 논쟁이 뒤엉켜 있는 인간사의 압축판과도 같다. 가난한 어린 시절, 대중의 사랑을 등에 업은 정치적 영향력, 급속히 상승한 권력, 33세에 요절까지 모든 드라마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에비타’가 말하는 ‘에바의 힘’은 화려함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구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려 했던 태도에 가깝다. 스스로의 서사를 빚어낸 자로서 현대의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강력한 울림을 남긴다.

이번 시즌 제작진이 강조한 ‘정치적 이념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입장은 이와 같은 에바의 복합성을 다시 환기한다. 작품은 군부 독재나 역사적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1970~80년대 당시 검열로 삭제된 장면들이 있었다는 한국 초연의 역사적 맥락에서도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에비타’의 힘은 결국 음악과 연출이 결정짓는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배우가 가진 모든 감정의 결을 한 장면에서 증명해야 하는 장대한 포인트다. 이번 시즌은 이 장면을 흑백 영화적 질감의 영상과 절제된 감정 연출로 구성, 과도함이 아닌 품위 있는 흐름으로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연출은 역동적 안무와 정돈된 편곡, 화면과 조명의 매끄러운 조합으로 2025년 공연만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간결한 무대는 군더더기 없는 공간 속에서 에바의 삶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가 되며, 이는 캐릭터 중심의 서사라는 작품 본연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2025년 시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캐스팅의 균형감이다. 에바 페론 역의 김소현, 김소향, 유리아는 서로 다른 해석을 통해 에비타를 입체적으로 확장해낸다. 김소현은 절제된 고급스러움과 권력에 눈뜬 여인의 단단함을, 김소향은 서늘함 속의 인간적인 균열을, 유리아는 뜨거운 에너지와 폭발력을 통해 젊은 에바의 질주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내레이터 ‘체’는 작품의 도덕적 시선이자 비판적 목소리로 기능한다. 마이클리, 한지상, 민우혁, 김성식은 각기 강렬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며 극의 긴장감을 조율한다. 후안 페론 역의 손준호, 윤형렬, 김바울 역시 캐릭터의 정치적 움직임과 인간적 면모를 균형 있게 담아내며 작품의 서사적 무게를 책임진다.
 

사진=블루스테이지

2006년 초연은 원작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라는 호평과 동시에 당시 한국 무대 기술의 한계가 드러난다는 지적이 공존했다. 2011년 재연은 배우의 열연과 음악적 재해석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연출이 보수적이라는 의견도 일부 존재했다. 이번 2025년 시즌은 단점을 보완하고 시대적 언어를 새롭게 장착하며 작품의 현재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25년 프리뷰 공연은 전반적으로 호평과 기립박수로 이어졌다. 관객들은 “에바의 서사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정제된 무대 언어가 감정의 농도를 높인다”, “에비타의 귀환이 이렇게 현대적일 줄 몰랐다”는 반응을 남기며 시대적 감수성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연출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25년판 ‘에비타’는 인간적 초상에 집중하며 권력이란 무엇인가, 대중이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역사에 어떻게 흔적을 남기는가 질문을 던진다. 답은 무대 위에서 “이 모든 건 결국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입니다”라는 에바의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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