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하리보 김치’ 입안의 문화충돌, 마음의 화해

권수빈 기자 / 기사승인 : 2025-03-06 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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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유럽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연출가 구자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예술대학교 석사)가 그간 ‘하마티아 3부작’ — ‘롤링 앤 롤링’, ‘쿠쿠’, ‘한국의 역사’ — 을 통해 한국 사회와 역사, 이주와 경계의 감각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구성해 보인다.

 

사진=주스페인한국문화원

‘하리보 김치’는 지난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초연된 이후 이번에는 스페인 바야돌리드의 칼데론 극장 및 마드리드의 콘데두케 현대문화센터에서 총 4회에 걸쳐 공연된다. 이야기는 포장마차 무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관객 두 명을 무대 앞으로 초대해 직접 김치전·미역냉국·버섯튀김 등을 내어놓고, 그 음식들과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엮으며 대화를 진행한다. 작품 속 무대는 고정된 국적을 가진 공간이라기보다는 ‘한국도 유럽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로 설정되어 있다. 영상·사운드·퍼포먼스·음식이 뒤섞여 ‘하이브리드 연극’이라 불리고 있다.

‘김치’는 작가가 한국에서 태어나며 체화한 문화적 배경, 그가 피할 수 없는 정체성의 징표로 작용한다. 반면 ‘하리보(Haribo)’ 젤리는 그가 유럽에서 새롭게 접한 후천적 취향이자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경계적 존재의 은유라 할 수 있다. 두 단어의 결합은 “한국과 유럽 사이의 중간지대를 살아가는 나”라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러한 상징을 음식이라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매체를 통해 풀어낸다. 포장마차를 무대로 한 ‘하리보 김치’에서 음식은 정체성과 이주, 문화적 이질감의 총체로 기능한다. 관객은 익숙한 음식의 냄새와 질감을 통해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형식적으로도 작품은 전통적인 연극의 경계를 넘는다. 포장마차라는 공간 설정 속에서 배우와 관객이 대화를 나누고, 영상·사운드·로보틱 오브제 등이 한데 어우러진다. 구자하작가는 이러한 무대의 유연함을 ‘젤리니스(jelliness)’라 부른다. 젤리처럼 부드럽고 탄력 있는 태도, 즉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제 형태로 돌아오는 생명력 있는 예술의 상태를 뜻한다.

‘하리보 김치’는 그렇게 젤리처럼 흔들리며 김치처럼 발효되는 연극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재조합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스페인한국문화원이 현지 기관과 협력해 마련한 스페인 내 공연은 한국의 현대연극이 글로벌 공연예술의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이다. 특히 유럽에서 활동해 온 작가의 한국-유럽 중간적 시점이 현지 관객에게 ‘한국 연극’이 아닌 ‘국제적 연극’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국 문화정책 측면에서도 장르 다양성과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는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다.

‘하리보’와 ‘김치’라는 단어가 충돌하는 순간, 우리는 낯선 감각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 낯섦이야말로 오늘날 국경과 정체성이 흐려지는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는 그 질문을 음식과 퍼포먼스로 맛보게 한다. 스페인 관객 앞에서 한국 연극이 펼쳐지는 지금, 작품은 경계 위에서 재배치된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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