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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3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며 한국을 떠난 다비트 라일란트는 자신을 ‘지휘자’보다 ‘좋은 인간’으로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고전과 낭만, 현대를 잇는 감수성을 가진 해석자로서 그는 지난 3년간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벨기에에서 태어난 라일란트는 어린 시절부터 독일·프랑스 양 문화권을 오가며 성장했고, 이른 나이에 메스 국립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유럽에서 촉망받는 젊은 지휘자로 급부상했다. 2018년 국립오페라단 ‘코지 판 투테’를 통해 코리안심포니(현 국립심포니)와 처음 만난 그는 2022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취임 후 비로소 한국과 깊은 인연을 시작했다.
국내 활동 3년간 라일란트가 보여준 리더십은 ‘좋은 지휘’의 차원을 넘어섰다. 단원들은 그를 ‘온화한 완벽주의자’라 불렀다. 라일란트는 매 리허설마다 “모두가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며 한국 단원들을 칭찬했다. 퇴임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한국의 음악가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200%의 집중을 잃지 않는 이 문화는 유럽에서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같은 발언은 한국 음악계의 특징을 외부의 시각으로 포착한 진단이자 그가 한국에서 느꼈던 깊은 감동의 고백이었다.
라일란트는 “모든 음악가는 평등하다”고 말했고, 철학은 지휘봉을 들어 올리는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한 음도 헛되이 하지 않는 디테일을 추구하면서도 단원 한 명 한 명이 음악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실제로 여러 단원들이 “내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을 만큼 라일란트는 음악가들의 내부에 숨어 있는 능력을 끄집어내는 데 능숙한 지휘자였다.
해석은 늘 온화했지만 힘이 있었고, 선명했지만 인위적이지 않았다. 특히 라벨·베를리오즈 등 프랑스 레퍼토리에서 보여준 결은 그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마지막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에 대해 “이 작품은 원래 러시아 피아노곡이지만 라벨의 편곡을 통해 프랑스적 감수성을 입었다. 두 얼굴을 모두 지닐 수 있다는 점이 제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며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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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심포니 제258회 정기연주회는 그의 한국 활동의 마침표이자 정점이었다. 브람스 협주곡과 ‘전람회의 그림’이 끝난 뒤 객석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무대 뒤로 향하던 라일란트가 사라지자 악장 김민균이 객석을 향해 조용히 손짓했고, 단원들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을 연주하며 마지막 인사를 준비했다. 돌아온 라일란트는 참아왔던 감정을 넘긴 채 눈물을 흘렸다.
라일란트는 기자간담회에서 “클래식 음악의 과거는 유럽에 있지만 미래는 여러분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기술적 능력, 문화에 대한 존중, 호기심을 합치면 영원히 기억될 음악을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말은 한국 클래식 음악이 국제적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대적 흐름을 짚어낸 선언이기도 했다.
그러나 라일란트의 가장 깊은 발언은 마지막을 앞둔 단원들과의 인사에서 나왔다. 한 단원이 선물을 건네자 그는 “내게 최고의 선물은 너의 음악이었다”고 말했다. 늘 “우리는 모두 평등한 음악가로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협력자”라고 말해왔던 신념은 지도 방식, 음악적 접근, 단원과의 관계 모든 곳에서 살아 있었다.
이제 라일란트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메스 국립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로잔 신포니에타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동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는 한국을 떠나면서 “여기가 끝이 아니라 음악이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립심포니가 남긴 눈물의 앙코르와 한국 관객의 깊은 침묵은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음악의 증거일 것이다. 라일란트는 떠났지만 그가 심어놓은 음악의 윤리와 감수성, ‘좋은 인간’이라는 인상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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