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

김대조 목사 / 기사승인 : 2019-11-25 08: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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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조 목사

(주님기쁨의 교회) 


한 해를 마무리 할 때면 늘 제 마음 속에 다가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떠남’입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저는 늘 도시를 동경했습니다. 몇 명 안 되는 시골 교회를 다닐 때는 대학에 들어가 도시의 큰 교회로 가서 많이 배우고 그곳 사람들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작은 우물 안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큰 곳으로 떠나고 싶은 설렘, ‘떠남’의 소망이었지요.

오래 전 스위스 알프스에서 산봉우리를 올라가는 육중한 산악 기차 안에서 한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여기 사신지 얼마나 되셨나요?”라고 물으니 여기서 태어났고, 90세가 넘도록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융프라우는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해 깜짝 놀랐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이 있습니다.

성경은 ‘떠남’을 다양하게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의 떠남(에덴에서 쫓겨남), 아브라함의 떠남은 환경을 옮기는 떠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신앙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인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하시고 옮겨 심으십니다. 새로운 시작으로 이끄십니다. 잠깐 하란에 머물지만 결국 가나안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의 욕심을 무너뜨리십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사람들을 흩어버리지요.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셈의 족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셈의 후손에서 데라(머물다)의 삶이 등장하고 그의 아들로 아브라함이 태어납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 때 아브람이 순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 12:4)

우리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정을 통해 ‘떠남’이 주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떠남은 타이밍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조금만 더’ 하다가 아들 하란이 죽는 사건이 생기고서야 진작 떠났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며 떠납니다.(창 11:31) 타이밍을 놓친 겁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실제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죽게 될 때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여자 친구의 권면대로 “그때 떠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합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이 시간, 떠나고 떠나 보낼 최고의 타이밍입니다.

둘째, 떠남은 뒤돌아보거나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데라의 머뭇거림은 하란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멈추지 말고 가야 했지만 결국 그곳에서 죽습니다.(창 11:32) 떠날 때 머뭇거려도 안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아내가 아쉬움과 궁금함으로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의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고 왜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창 12:4)

셋째, 떠남은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 12: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아브라함은 행동했습니다. 믿음은 행동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아쉬움과 미련이 남겠지만 내가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장소, 떠나보내야 할 고정관념·집착·고집·욕심이나 잘못된 습관은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떠나야 할 사람, 떠나보내야 할 사람을 향한 구체적인 돌아섬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노래 ‘가시나무 새’에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소절이 나옵니다. 떠남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어렵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떠남으로 새롭게 다시 사는, 승리하는 한 해의 마무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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