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유제린 기자 유제린 기자 / 기사승인 : 2020-02-04 08: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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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성균 목사

미국 샬롯장로교회 

 

성도들의 말세의 삶이 녹록지 않습니다. 더구나 곧 무서운 심판이 다가와 견디기 어려운 환난과 핍박이 닥칠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신앙이 점점 식어가는 것을 느끼는 이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반드시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은 무서운 저주와 심판을 피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어느 것 하나 당연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세다를 책망하십니다.

고라신은 가버나움 주위 곧 북서쪽 약 10리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물고기의 집이라는 뜻의 벳세다는 좀더 바다쪽으로 떨어져 있던 어업의 도시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과 열정적인 제자들의 삶의 변화를 전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복음에 가장 가깝게 접근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 회개가 없는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두 도시를 책망하며 두로와 시돈을 예로 듭니다. 주전 2750년 건설된 두로와 주전 1400년 건설된 시돈은 부유함과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사치와 방탕으로 타락했습니다. 오히려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에 전파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망하게 했습니다. 불의와 압제와 광포로 사회를 타락시키고 주신 복을 귀중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심판 날엔 고라신과 벳세다보다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심각한 책망을 들은 그 도시의 사람들은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무서운 심판을 피하기 위해선 어느 것 하나 예사로 취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에게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이 소중한 영적·정신적 문화와 물질생활적 축복은 어느 것 하나 예사로 취급할 것이 없는 것들입니다. 세계 사람들이 그토록 갖기 원하는 것입니다. 불과 50년 100년 전에 그렇게도 선조들이 누리며 즐기기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지극히 작은 어느 것 하나라도 당연시하지 않고 깊은 감사와 감격으로 받을 때 우리의 신앙은 회복되고 우리의 영성은 살아날 것입니다.

둘째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는 더욱 노골적입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소돔이 타락의 상징이요 마땅한 저주와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보다 더 타락하고 더 형편없는 곳을 가버나움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교만해서 자기를 알지 못하는 자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요, 어마어마한 저주요, 심판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사탄이 그래서 타락해 멸망과 저주의 길을 가게 됐고 아담과 하와가 이 죄 때문에 인류를 불행과 저주에 빠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도 이것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고 이만큼 자아를 주장할 만큼 똑똑해진 것은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교만으로 연결되고 어느 것 하나 귀한 것이 없고 감사한 것이 없고 감격스러운 것이 없는 강퍅한 삶이 된다면 그것은 저주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동안 많은 복을 받고 보니 많은 것을 누리다 보니 눈이 높아져 보이는 것이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무엇 하나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격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진실로 간구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앞길은 다시 태양과 같이 빛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살길을 찾는 것이요,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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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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