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단성의 엘리사

강학종 목사 / 기사승인 : 2019-11-22 09: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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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학종 목사

서울 하늘교회

 

이스라엘 북쪽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끼리 사이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아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동안에는 안 그랬습니다. 아람이 쳐들어올 때마다 이스라엘이 미리 알고 막아낸 것입니다. 아람 왕이 이 일로 회의를 엽니다. 누군가 이스라엘과 은밀히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신하가 이스라엘에 선지자 엘리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신하가 왕보다 조금 낫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둘 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어쨌든 아람 왕 생각에 엘리사를 그냥 둘 순 없었습니다. 군대를 보내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을 에워쌉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를 생각해 볼까요. 별을 보고 찾아 온 동방박사들이 왕이 태어난 곳을 묻자 헤롯이 놀라 대제사장과 서기관에게 확인합니다. 그들은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합니다. 메시야에 대해 헤롯보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이 훨씬 많이 아는 셈입니다. 물론 의미는 없습니다.

방금 하나님을 모르는 두 유형을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하나님을 아는 두 유형을 확인할 차례입니다. 엘리사와 엘리사의 심부름꾼입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태어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율법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평온한 반면 심부름꾼은 겁에 질립니다.

요즘말로 바꾸면 둘 다 교회에 다닙니다. 성경도 제법 압니다. 십일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몹시 두려워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이런 차이가 왜 있을까요.

불순종에는 등급이 없어도 순종에는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사람들은 이 내용을 거꾸로 생각합니다. 불순종에는 등급이 있고 순종에는 등급이 없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 1장 19~20절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결실을 먹습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순종하면 손가락만 빨게 될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집니다. 고민 끝에 거절했는지, 주저 없이 단번에 거절했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아람 왕과 신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굳이 따지자면 아람 왕보다 신하가 조금 낫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엘리사와 심부름꾼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은 둘 다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불순종에는 등급이 없어도 순종에는 등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눈에는 심부름꾼에게 안 보이는 불말과 불전차가 보였습니다. 본문 17절에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점이 있습니다. 불말과 불전차가 도단성을 지켜서 성에 살고 있는 엘리사가 보호받은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를 지켰기에 그가 있는 도단성이 아울러 보호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좋은 교회를 찾습니다. 좋은 교회를 찾아서 거기에 속하기만 하면 저절로 좋은 교인이 되는 줄 아는 것일까요. 기왕이면 자기가 좋은 교인이 되어서 자기로 인해 그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면 안 될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하나님 나라에 가까스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널리 알려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좋은 교인이 되면 내가 속한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됩니다. 그런 신앙인이 정말 좋은 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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