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에게 배우자

/ 기사승인 : 2019-08-02 08: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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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논설위원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충무공 이순신의 장계는 목숨을 건 비장함을 웅변한다. 하지만 그의 연전연승 비결은 이런 비장함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길 수를 다 찾고 싸운다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이 핵심에 가깝다. 이순신은 가급적 아군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싸웠다. 임진왜란 첫 승전인 옥포해전이 대표적이다. 판옥선 28척 등 85척으로 왜군의 작은 배 30여 척과 맞붙어 적선 26척을 분멸했다.



망망대해를 싸움터 삼아 원거리 함포를 쏘는 방식으로 이순신은 여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아군 피해도 미미했다. 반면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에 능한 왜군과 좁은 바다에서 만나면 전세는 아군에게 불리해졌다. 이순신이 바닷길 이름에 ()’ 자가 붙는 좁은 해협에선 가급적 싸움을 피했던 이유다. 고령의 원균이 고개를 젓다가 몽둥이를 맞고 억지로 출전한 칠천량해전은 참패로 끝났고 명량해전은 칠천량 패전 직후 왜군의 해상 보급로 구축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싸움이었다.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정치인이 주로 23전 중 명량해전을 조명하는 이유는 극적인 신승(辛勝) 때문이겠지만 171로 싸우는 상황은 피하는 게 맞는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단호한 대응 여론이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전남도청을 방문해 전남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다고 언급했다. 싸울 땐 싸워야 한다. 다만 이 싸움에 이순신을 소환할 요량이라면 그가 결연한 의지와 끓어오르는 적개심이 아니라, 소설가 김훈의 표현대로 바다의 사실에 입각해 싸웠다는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 ·중 패권전쟁에 일본을 동원하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일본 우익의 재무장 의지가 결합된 치밀한 침탈에 무분별한 반일감정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무라이들이 득실대는 좁은 해협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자살행위다. 마침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이 옥포해전의 격전지 부근인 저도를 방문했다. 대통령의 저도행()이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 대응이 법리와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에 기초한 선승구전의 전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차가운 이성의 표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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