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부마항쟁, 유신 무너뜨린 위대한 항쟁”

아시아뉴스 / 기사승인 : 2019-10-16 13: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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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국가기념일 지정된 부마항쟁기념식 참석

“우리 민주주의가 양보, 상생, 통합으로 성숙해지길”

“4.19, 5.18, 6.10항쟁과 함께 민주주의 상징하는 날”

▲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경남 창원시 경남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은 지난달 부마민주항쟁 발생일인 10월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첫 정부주관 행사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엄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남 창원의 경남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기념식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부마항쟁은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히는 부마항쟁은 지난달 24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문 대통령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첫 기념식에 참석해 부마항쟁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오늘 처음으로 정부주관 기념식이 열린다”며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가기념일로 기리게 돼 국민들께서도, 시민들께서도 더욱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기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부산, 창원 시민들은 줄기차게 항쟁기념일을 지켜왔다. 저 자신도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에서 활동했고, 이곳 경남대 교정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부마항쟁에 대해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엄혹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유신독재를 무너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위대한 항쟁”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비록 신군부의 등장으로 어둠이 다시 짙어졌지만, 이번엔 광주 시민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치열한 항쟁을 펼쳤고, 마침내 국민들은 87년 6월항쟁에 이르러 민주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이루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오늘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어제의 노력이 더 발전된 민주주의로 확장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라며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천하는 가운데 확장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언제나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살려온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양보하고 나누며, 상생하고 통합하는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정부가 부마항쟁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보상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먼저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고 유치준 님이 40년이 지나서야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공식 인정됐다. 그동안 국가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돌보지 못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했다.

 

또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유신독재의 가혹한 폭력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 모두에게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숫자로만 남아있는 항쟁의 주역들과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할 것이며, 국가폭력 가해자들의 책임 소재도 철저히 규명하겠다”며 “이제 와서 문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난해 발의한 개헌안에서 헌법전문에 4.19 혁명에 이어 부마 민주항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항쟁의 민주이념 계승을 담고자 했다”며 “비록 개헌은 좌절되었지만 그 뜻은 계속 살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념식 참석에 앞서 ‘부마 민주항쟁 특별전시’를 항쟁 참여자들과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부산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그린 걸개그림 ‘부마민주항쟁도’를 비롯한 그림이나 당시 배포된 선언문·신문 기사·사진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와 관련, 부마민주항쟁은 지난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이다.

 

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 총재로 당선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됐다.

 

이어 8월 11일 YH사건, 9월 8일 김 총재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 10월 4일 의원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유신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크게 고조됐다.

 

그러한 가운데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했으나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돼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김 총재의 정치적 본거지인 부산에서는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 시민들이 합세하여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전개됐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파출소·경찰서·도청·세무서·방송국 등을 파괴했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18일 0시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으며,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다.

 

비록 시위는 진정됐나,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사망함으로써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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