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칭기즈칸 DNA···'간고탁절(艱苦卓絶)'

이상기 논설위원 이상기 논설위원 / 기사승인 : 2021-02-10 16:32:30
  • -
  • +
  • 인쇄
▲몽골제국 초대 황제 칭기스칸/ 이미지= 중국망 제공.

 

[아시아뉴스 = 이상기 논설위원] “내가 죽더라도 위대한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칭기즈칸)”

 

최근 미국의 유력 매체로 꼽히는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1000년 동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즈칸(Chingiz Khan, 成吉思汗)을 선정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몽골의 장군이자 몽골제국(蒙古帝國)의 초대 황제였던 인물이죠.

 

칭기즈칸 세계 최대 제국이자 광활한 대륙 몽골 대제국을 이룩한 비결은 과연 무었이었을까요. 사실 당시 그는 전 세계가 모두 두려워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800여 년 전으로 돌아보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지도자였습니다.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그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대제국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유년시절에서 시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삶에 영향을 준 어린 시절 환경을 키워드로 요약하면 가정(family)과 연인(female), 친구(friend) 즉, '3F'로 추려집니다.

 

칭기스칸의 본명은 테무진(鐵木眞)입니다. 몽골의 역사책에는 테무진의 출생 모습에 대해 "오른 손에 주사위 뼈만한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그는 눈에는 불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운명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예견하는 대목이죠.

 

테무친의 유아 시절은 상당히 부유했습니다. 자연히 교우관계도 원만했겠죠. 하지만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진을 약혼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이웃 타타르족에게 독살 당한후 부족의 배신과 외면에 테무친 일가는 들쥐를 잡아먹을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렸죠. 그의 나이 9살이 되던 해의 일입니다. 

 

더욱 애석한 일은 또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9살 당시 테무진과 혼인을 정약한 약혼녀를 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테무진이 청년이 된 후 어릴 적 약혼녀를 수소문해서 찾았지만 그녀 또한 당시 강제 납치되어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를 잃고 온 가족은 거리로 내쫒긴 상황에서 약혼녀까지 잃은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건 '죽마고우' 였습니다.

 

테무친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형제나 다름없는 절친한 삼총사가 있었습니다. 벡테르와 자무카란 친구들 입니다. 하지만 장차 부족 전체를 다스릴 우두머리 ‘칸’의 자리를 놓고 ‘벡테르’의 아버지는 예사롭지 않은 테무친을 경계했죠. 

 

급기하 벡테르의 아버지는 벡테르를 앞세워 '죽마고우'인 친구 테무친을 사살하도록 세뇌했고, 결국 다툼 끝에 테무친은 벡테르를 죽이게 되죠. 이 일로 테무진은 부족과 가족을 떠나 홀로 쫓기는 신세에 처하게 됩니다. 

 

▲ 13세기 동아시아에서 동유럽에 걸쳐 세계 최대의 제국을 이룩한 몽골제국 영토(붉은색)/ 사진= 구글.

 

도망자 신세로 방랑생활을 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옛 친구인 왕칸을 만나게 됩니다. 왕칸은 모든 부족과 군사들을 하나로 통합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가진 테무친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죠. 

 

결국 왕칸의 배려와 절대적 신임을 얻은 테무친은 왕칸의 뒤를 이어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가족과 연인, 친구를 잃고 분노와 복수심이 극에 달하였던 테무친이 마음을 다지고 이를 잘 극복하면서 그의 나이 27세에 이룬 결과였죠. 

 

이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전설 속의 신의 아들 이름인 ‘칭기즈칸’으로 개명하며 부족의 부족장(칸)으로 활약하며 훗날 몽골의 장군이자 모든 부족을 통일한 몽골제국(蒙古帝國)의 초대 황제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칭기즈칸은 청소년기의 갑작스런 집안 환경 변화와 치열한 생존 경쟁상황에서도 결코 굴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자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는 리스크 관리 능력과 용수철처럼 뛰어 오르는 복원력(resilience)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길러졌죠.

 

마치 적을 만난 도마뱀처럼 꼬리를 잘라내고 줄행랑치지만 다시 쑥쑥 자라나고 잡초처럼 몇 번이고 비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7전 8기의 정신은 어떠한 위기와 악조건의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전투력을 재창조하는 힘을 구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과 과정을 두고 청천벽력 같은 환경적 변화나 신변 위협으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가 그로 하여금 불굴의 인내와 신비스러운 광기(狂氣) 등의 DNA를 갖추도록 만들었다고 분석합니다.

 

중국 송사(宋史) 소옹전에는 ‘간고탁절(艱苦卓絶)’이라는 성어가 나옵니다. "극단적 고통에 이르면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뜻이죠. 각종 물리적 환경과 심리적 요인이 개인의 성격형성 뿐만 아니라 사고와 인생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또 이런 고통은 절실함에서 비롯된 창의적인 발상과 적응력, 강인한 인내와 추진력 등을 기반으로한 긍정적인 사고를 이끌어 집단의 응집력 강화와 초감정으로 나타나는 강인한 집단 공동체 의식을 형성케 합니다.

 

‘간고탁절(艱苦卓絶)’ 어록을 반증하는 게 바로 칭기즈칸의 DNA가 아닐까 싶습니다. 칭기스칸은 “증오와 허세, 불안과 혼돈의 세상에서도 사랑하고 웃고 투쟁하는 사람이 되어라. 왜냐하면 생존 본능만 충분하다면 이러한 많은 종족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 설파했죠.

 

바로 그의 유소년 시절의 쓰라린 고통과 처절한 경험을 통해서 폐부 속 깊이 몸에 배어 있었던 생존본능이 고난과 분노를 다스리고 그가 이루고 싶었던 제국의 꿈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것이죠. 800여년이 흐른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절, 새겨봐야 할 DNA가 아닌까 싶습니다.   

 

이상기 논설위원(한중지역경제협회장) skrhee@asianews.news 

[저작권자ⓒ 아시아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상기 논설위원
  • 글자크기
  • +
  • -
  • 인쇄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정치·사회

+

종교

+

오피니언

+